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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 글인가

이 글은 내 글인가

2026-06-25

lcamtuf이 Hacker News를 한 줄로 정리한 수치가 하나 돌았다. 2026년 6월, 일일 상위 스토리의 약 55%가 AI 관련이거나 AI가 써낸 글이라는 것이다. 2월의 40%에서 넉 달 만에 과반을 넘겼다. 그가 쓴 방법은 단순하다. 매일 상위 글을 손으로 분류하고, AI 생성이 의심되는 글은 탐지기로 걸러 다시 눈으로 확인했다.

흥미로운 건 숫자 자체가 아니라 탐지가 가능했던 이유다. LLM은 프롬프트를 손대지 않으면 거의 정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 준결정론적 기본 문체가 패턴을 남기기 때문에 잡힌다. 뒤집으면, 지금 55%로 집계된 글들은 프롬프트조차 다듬지 않은 게으른 글이라는 뜻이다. 손을 댄 글은 애초에 세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55%는 천장이 아니라 바닥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바닥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이 블로그도 AI를 써서 쓴다. 그래서 저 수치를 보며 떠오른 질문은 ‘HN이 망가졌다’가 아니었다. ‘그러면 이 글은 내 글인가’였다.

신뢰는 양이 아니라 비대칭으로 무너진다

55%라는 숫자의 진짜 피해는 콘텐츠가 아니라 읽기에 있다. 절반이 AI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독자는 나머지 절반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며칠을 들여 쓴 글도 ‘이거 AI 아니야?‘라는 시선을 먼저 받는다. 오염은 글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기본 태도에서 일어난다.

신뢰가 무너지는 방식은 비대칭이다. 열에 하나만 가짜여도 열 전부를 의심하게 된다. 진위를 가릴 비용이 글 한 편을 읽는 비용보다 커지면, 사람은 가리기를 포기하고 통째로 불신하는 쪽으로 기운다. AI가 망치는 것은 글이 아니라 읽기다. 한 편의 가짜가 백 편의 진짜에서 신뢰를 빼앗아 간다.

이 구도에 서면 ‘AI로 썼느냐’는 질문은 사실 핵심이 아니게 된다. 도구를 댔는지가 아니라, 이 글에 책임지는 판단이 누구의 것이냐가 진짜 질문이다. 나는 거기서 답을 정해야 했다.

그래서 편집자를 고용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 쓰면서 멈칫한다. 이 문장은 내가 쓴 건가, AI가 쓴 건가. 답을 길게 끌 것 없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나는 편집자를 한 명 고용한 것이다.

책 한 권이 나오는 과정을 떠올려 보면 그림이 분명해진다. 필자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편집자와 주고받는다. 편집자는 그 이야기를 기술적으로 다듬어 글의 꼴을 잡는다. 필자는 다듬어진 원고를 다시 읽고,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대목이 있으면 수정을 요청한다. 이 왕복에서 책의 문장 상당수는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만, 누구도 그 책을 편집자의 책이라 부르지 않는다.

AI가 하는 일이 정확히 그 편집자의 역할이다. 논점, 그러니까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는 나에게서 나온다. 문장의 표면이 AI를 거쳤다는 사실은 저자가 누구인지를 바꾸지 않는다. 내가 확인하고, 어긋나면 되돌리는 한, 이 글의 생각은 내 것이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멈칫할 일이 없어졌다.

도구로 보느냐, 인격체로 보느냐

이 물음은 새것이 아니다. ChatGPT가 막 나오던 무렵, 업무 현장에서도 똑같은 말이 늘 따라다녔다. ‘그거 AI가 한 거지, 네가 한 거야?’ 결과물 앞에서 능력의 소유권을 따지는 그 질문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 말이 AI를 무엇으로 보느냐에서 갈린다고 본다. 나는 AI를 도구로 봤다. AI를 쓰면 내가 도태된다고 여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AI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하지 않았나 싶다. 나와 경쟁하는 또 하나의 주체로 본 것이다. 도구는 나를 대체하지 않는다. 경쟁자만이 나를 대체한다.

나에게 AI는 계산기를 쓰고 컴퓨터로 엑셀을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계산기를 썼다고 그 답이 계산기의 공로가 되지 않듯, 엑셀이 합계를 냈다고 그 보고서가 엑셀의 것이 되지 않는다. 도구는 능력의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는다. 그것을 무엇에 쓸지 정하는 판단만이 소유권을 가른다. AI는 그저 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사실 이건 포지션이 바뀔 때의 불안이다

그런데 이 불안이 AI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니다. 직급이 올라가며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현상과 닮았다.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는 시점의 흔한 혼란 말이다.

실무를 하던 사람이 관리자로 올라가면, 손에서 실무를 놓는 데서 오는 불안을 겪는다. 내가 직접 짜던 것을 이제 남에게 맡기고 결과만 본다. 잘하던 일을 손에서 떼는 감각은 성장이 아니라 상실처럼 느껴진다. 포지션의 변경은 늘 과거에 중요했던 무언가를 내려놓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AI의 등장도 다르지 않다. AI를 쓰면 도태된다는 감각의 정체는, 잘하던 일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그 오래된 불안이다.

AI가 에이전트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제는 코딩 자체를 완전히 내려놓는 지점에 이르렀다. 실제로 올해 들어 시작한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줄의 코드도 내가 직접 짜지 않았다. 가끔은 나 역시 이대로 순수한 코딩 능력을 잃어가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다만 그럴 때마다 이것이 도태가 아니라 포지션의 변경임을 다시 되새긴다. 실무자가 관리자가 되며 코드를 놓듯, 나는 키보드를 놓고 판단으로 올라서는 중이다.

마무리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일이다. 도구를 손에 쥐고도 잃을 것을 먼저 세는 사람은, 잃지도 얻지도 못한 채 자리에 멈춰 선다.

이 글이 내 글인가라는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면, 답은 분명하다. 도구를 얼마나 썼는지가 저자를 정하지 않는다. 책임지는 판단이 누구의 것인지가 정한다. 그 판단을 내가 쥐고 있는 한, 편집자를 몇 명 고용하든 이 글은 내 글이다. 코드를 한 줄도 짜지 않은 프로젝트도 내 프로젝트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가진 도구를 전부 꺼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낼 일이다. 내려놓는 자리에 상실만 남는 것이 아니다. 손이 비어야 더 위를 쥘 수 있다.

마지막 수정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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